2011년 내 이글루 결산

2011 내 이글루 결산

1년동안 작성한 빼뽀네님의 결산내역입니다. 이글루에 포스팅하여 공유해보세요.
본문이 500px 이하인 스킨은 지원하지 않아 포스트가 잘려보일 수 있습니다.
결산기간 : 2011년 12월 26일~ 2012년 1월 9일

포스트[3]

 2 1  
 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 

덧글[18]

 1 6 8 3  
 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 

트랙백[0]

2011년 한 해 동안 받은 트랙백이 없습니다.
 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 

핑백[0]

2011년 한 해 동안 받은 핑백이 없습니다.
 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 

내가 보낸 글 통계[40]

 3 37 0 0 0 0  
 테마태그가든보낸트랙백보낸핑백블로거뉴스 

포스트 수 비교

 (2010년 포스트 : 4개)
20102010  20112011
 3 2 1 1  
 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 

명예의 전당

1년동안 작성한 글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687장 분량이며, 원고 두께는 약 5cm 입니다.
1년 동안의 글을 문고판 시리즈로 낸다면 4권까지 낼 수 있겠네요. 빼뽀네님은 올 한해 이글루스에서 75,519번째로 게시물을 가장 많이 작성하셨네요.

자주 등록한 태그&대표글 TOP5

  1. 1위: 까마귀의향연(5회)|세븐킹덤의 전문가 집단, 마에스터
  2. 2위: 얼음과불의노래(5회)|세븐킹덤의 전문가 집단, 마에스터
  3. 3위: 왕좌의게임(4회)|세븐킹덤의 전문가 집단, 마에스터
  4. 4위: 성검의폭풍(4회)|세븐킹덤의 전문가 집단, 마에스터
  5. 5위: 왕들의전쟁(4회)|세븐킹덤의 전문가 집단, 마에스터

자주 발행한 밸리&대표글 TOP5

  1. 1위: 도서(2회)|세븐킹덤의 전문가 집단, 마에스터
  2. 2위: 역사(1회)|신채호는 묘청과 묘청의 서경 전역을 긍정적으...

내 이글루 인기글

  1. 가장 많이 읽힌 글은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 (전 3권 예... 입니다.
  2. 가장 대화가 활발했던 글은 세븐킹덤의 전문가 집단, 마에스터 입니다.
  3. (덧글5개, 트랙백0개, 핑백0개)

내 이글루 활동 TOP5

  1. 1위: 탈퇴한 회원 (3회)
  2. 2위:간이역 (2회)
  3. 3위: (1회)
  4. 4위:Dominic (1회)
  5. 5위:chojae (1회)
내 이글루결산

※ 2011년도 빈약하다.

by 빼뽀네 | 2011/12/30 14:09 | 트랙백 | 덧글(0)

세븐킹덤의 전문가 집단, 마에스터

<마에스터>

 

세븐 킹덤에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한 사람을 말한다.

 

  마에스터는 전문적인 지식의 소유자들로, 자신이 습득한 지식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각지의 영주들이나 영주에 준하는 사람들의 상담역이나 보좌역으로 활동하고 있다.1)

  이들은 역사나 신화와 같은 인문학은 물론이고, 과학, 의술, 상업, 까마귀를 이용해 연락을 주고받는 방법, 전략 전술 및 마법2)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영역에 걸쳐 지식을 습득하고 있다. 이들은 시타델에서 여러 가지 지식을 배우며, 그 지식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봉사할 것을 맹세한다.

  이러한 마에스터들은 사상가나 학자이기 보다는 교사나 기술자에 더 어울린다. 유명한 마에스터로는 윈터펠3)의 마에스터인 루윈이나 월4)의 마에스터인 아에몬 등이 있다.

 

<마에스터의 목걸이>

  마에스터들은 여러 가지 금속을 이어 만든 특별한 목걸이를 착용한다. 이 목걸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마에스터의 목걸이는 사슬 모양으로 생겼는데, 이것은 여러 종류의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왕국을 위해 봉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마에스터는 사람들에게 봉사할 것을 맹세하면서 이 목걸이를 직접 만든다.5)

  마에스터의 목걸이가 가진 두 번째 의미는 마에스터가 습득하고 있는 지식의 종류이다. 목걸이를 이루는 금속들은 각각 특정한 분야의 지식들을 나타내며, 마에스터는 새로운 지식을 터득할 때마다 그에 해당하는 금속을 이어 목걸이를 늘려 나간다.6)

 

1) 영주가 영지를 비울 때 믿을 만한 가족이 없다면 마에스터에게 영지의 관리를 맡기는 경우가 많다.

2) 마법은 별로 쓸모가 없어 대부분의 마에스터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다. 다만 마법에 관심을 가진 일부 마에스터들은 자신만의 주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3) 세븐킹덤 북부의 유력한 영주인 에다드 스타크 가문의 영지이다.

4) 세븐킹덤 북부의 방어 시설로 야만족이나 아더와 같은 이들의 침입을 막고 있다.

5) 이 때 목걸이를 이루는 금속들은 마에스터가 봉사할 영역을 상기시켜 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표적으로 금은 귀족이며, 철은 기사를 상징한다. 목걸이를 이루는 금속이 많은 것은 그만큼 세상에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6) 이 때 목걸이를 이루는 금속들은 마에스터가 습득한 지식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금은 돈이나 이익에 관련된 지식을, 은은 화해와 치료(의술, 여기에는 독약의 제조법도 포함된다.)에 관련된 지식을, 철은 전쟁에 관련된 지식을, 검은 철은 까마귀를 다루는 지식을, 발리리아 산 철은 마법에 대한 지식을 각각 의미한다.

<참고도서>
『얼음과 불의 노렌 1부, <왕좌의 게임>
『얼음과 불의 노렌 2부, <왕들의 전쟁>
『얼음과 불의 노렌 3부, <성검의 폭풍>
『얼음과 불의 노렌 4부, <까마귀의 향연>

by 빼뽀네 | 2011/09/01 09:45 | 트랙백 | 핑백(1) | 덧글(5)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 (전 3권 예정)






















《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주)문학동네, 2011.

01. 책 소개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은 제1차 십자군의 행적을 서술하고 있다. 시기적으로는 대략 1095년부터 1099년까지의 일이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1차 십자군의 궐기로부터 예루살렘 탈환(또는 정복), 그리고 그 이후의 여러 십자군 국가의 건설까지의 이야기가 쉽게 이해된다. 이러한 장점은 시오노 나나미가 이 책의 중심을 십자군에게만 맞춰 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시오노 나나미는 일명 제후 십자군이라고 불리는 제1차 십자군을 클랜(Clan)'을 중심으로 바라보고 있다. 대략 일족(一族) 또는 씨족(氏族)으로 번역하면 적절할 듯한 이 클랜은 한 가문의 수장을 중심으로 혈연 관계로 뭉쳐 있는 집단을 말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소수의 십자군이 적지에서 큰 활약을 할 수 있었던 이유로 이 클랜을 꼽고 있다.1)

십자군 이야기 1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제1차 십자군이 피로스의 승리2) 를 어떻게 극복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제 2권에서는 이슬람의 반격이 시작될 텐데 십자군이 이 피로스의 승리를 어떻게 극복할지 그 내용 역시 기대된다.

 

02. 십자군 이야기 1에 등장하는 십자군 측 주요 인물

로렌 공작 고드푸르아 드 부용(34) : 신성로마제국의 제후로 두 동생 외스타슈와 보두앵, 그리고 사촌 보두앵과 함께 제1차 십자군에 참가한다.

풀리아 공작 보에몬드 디 알타빌라(47) : 이탈리아 남부의 제후로 조카인 탄크레디(22)와 함께 제1차 십자군에 참가한다.

툴루즈 백자 레몽 드 생질(54) : 프랑스 남부의 대영주로 오랜 기간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 세력과 맞서 왔다.

르퓌의 주교 아데마르 : 1차 십자군에 종군한 카톨릭 사제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인물이다. 아데마르의 역할은 십자군에서 교황을 대신하고 제1차 십자군에 참가한 제후들의 중재를 맡는 것이었다.

베르망두아 백작 위그(39) : 프랑스 필리프 왕의 동생으로, 형을 대신하여 제1차 십자군에 참가하였다.

노르망디 백작 로베르(42) : 잉글랜드에 노르만 정복 왕조를 연 정복왕 윌리엄의 장남.

블루아 백작 에티엔 : ‘정복왕 윌리엄의 사위로 아내의 등쌀에 못 이겨 십자군에 참가하게 된다.

플랑드르 백작 로베르(31) : 로베르는 비록 소수의 군대를 이끌고 제1차 십자군에 참가하였으나, 그는 언제나 십자군에서 큰 전공을 세웠다.

은자 피에르 : 피에르는 민중 십자군을 이끌고 제1차 십자군보다 먼저 소아시아로 진입하였다. 그러나 민중 십자군은 셀주크 투르크에게 와해되었고 그는 제1차 십자군에 합류하게 된다.

* 괄호 안의 나이는 1096년 기준임.

 

1) 물론 이슬람 세력의 분열도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

2) 로마와 겨루었던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에게서 유래한 이 말은 많은 손해를 입은 승리를 말한다. 보통 잃은 손해를 보충할 수 없는 승리에 쓰인다.

by 빼뽀네 | 2011/08/17 17:41 | | 트랙백 | 핑백(1) | 덧글(4)

신채호는 묘청과 묘청의 서경 전역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나?

한 줄 결론 : 신채호는 고려의 독립당이 몰락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묘청의 광망한 서경 거병(묘청의 난)에 있다고 여겨 이를 비판하였다.

 

0. 들어가며

고려 인종 13(1135)에 일어났던 묘청의 난은 신채호의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이란 논문을 통해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려 했던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신채호가 정말 묘청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어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을 다시 읽어 보며 이를 검토해보았다.1) 이 글은 신채호가 묘청에 가한 평에만 집중할 뿐이지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과 이에 대한 신채호의 인식을 검토하지는 않는다.

 

1. 묘청의 등장과 몰락

묘청(妙淸)은 서경(西京 : 平壤) 출신의 승려로 백수한(白壽翰) 정지상(鄭知常) 등의 추천으로 인종(仁宗)2)의 고문이 되었다(1127, 인종 5). 묘청은 인종의 신임을 얻어 서경에 새 궁궐을 지었으며 이곳으로 천도할 것을 주장하였다. 나아가 칭제건원론(稱帝建元論)과 금국정벌론(金國征伐論)을 펼쳤다.

하지만 서경 천도는 곧 김부식(金富軾) 등의 거센 반대를 받았다. 또한 묘청이 서경 천도를 꾀하는 과정에서 부린 농간이 탄로났고,3) 서경의 새 궁궐(대화궁)에 벼락이 치는 등 재해가 잇따르면서 결국 인종은 서경 천도를 단념하였다.4)

서경 천도가 좌절되자 묘청은 서경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1135, 인종 13). 묘청은 반란을 일으킨 후 국호를 대위(大爲), 연호를 천개(天開)라 하고 인종에게 서경으로 행차하여 대위국의 왕이 될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인종은 김부식을 서경정토원수(西京征討元帥)로 삼아 이를 진압하게 하였다. 결국 묘청은 조광(趙匡)에게 죽임을 당하였고, 그 목은 개경에 효시되었다. 반란 또한 이듬해에 모두 진압되었다.

 

2.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에 나타난 신채호의 묘청 비판

 

1) 서론에 나타난 묘청의 서경 전역(戰役)에 대한 신채호의 평.

신채호는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의 서론에서 묘청의 서경 전역을 낭 · (郎佛) 양가(兩家) 대 유가(儒家), 국풍파(國風派) 대 한학파(漢學派), 독립당 대 사대당, 진취사상 대 보수사상의 싸움으로 규정하고 있다.5) 신채호에 따르면 이 싸움에서 전자의 대표는 묘청이고 후자의 대표는 김부식이며, 묘청이 김부식에게 패함으로써 조선의 역사가 독립적 · 진취적 기상을 잃고 사회 각 방면에서 노예성을 띠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로 묘청의 서경 전역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6)

이와 같은 서문의 내용은 사실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본문을 살펴보면 묘청묘청의 서경 전역에 대한 신채호의 평은 매우 달라진다. 신채호가 묘청을 가리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은 광망(狂妄)하다라는 말이니, 미친 사람처럼 말이나 행동이 정상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2) 신채호가 보는 칭제북벌론(또는 독립당)의 진정한 영수는 누구인가?

신채호는 993(성종 12) 고려가 거란의 침입을 맞아 대안책을 마련하는 가운데 조정의 신하들이 낭가(郎家) 대 유가(儒家)로 나뉘었으며, 이 때부터 양자의 정치상의 투쟁이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7) 이러한 때에 금(: 여진족)이 거란과 북송을 멸망시키고 고려에 사대요구를 강요하자, 신채호는 고려 조정 내에서 강렬한 반금(反金) 의식과 함께 칭제북벌론(稱帝北伐論)’이 일어났음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이 칭제북벌론의 영수로 신채호가 꼽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물론 묘청도 여기에 들어있다. 다만 신채호가 칭제북벌론의 영수 가운데 처음으로 소개하는 이는 윤언이(尹彦頤). 묘청이 그 두 번째이며, 정지상이 그 세 번째이다. 윤언이는 윤관(尹瓘)8)의 아들로 신채호는 그를 유일한 낭가의 계통으로 소개하고 있다.

신채호에 따르면 이 세 사람은 칭제북벌에 대한 의견은 모두 같으나 서경 천도에 대한 입장은 서로 달랐다고 한다. 묘청과 정지상은 서경 천도를 주장하고 윤언이는 이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채호는 이 중 윤언이의 의견이 더욱 뛰어난 것이었다고 평가한다. 왜냐하면 서경(평양)은 북쪽 국경과 너무 가까이 있어서 적의 습격으로 쉽게 나라가 어지러워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9)

이렇게 보면 신채호는 칭제북벌론과 서경천도론을 구분하고 있으며, 서경천도론과 그 주창자인 묘청을 비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3) 신채호가 묘청을 광망(狂妄)하다고 본 이유들

신채호가 묘청의 서경천도론을 비판하고 있음은 위에서 이미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 신채호는 묘청이 광망(狂妄)하다라고 비판하지는 않았다.10) 신채호가 묘청을 광망(狂妄)하다라고 평가한 핵심은 그의 거병(擧兵)에 있었다.

신채호는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 . 묘청의 광망(狂妄)한 거동 - 서경의 거병에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묘청의 거병을 극력 비판하고 있다.

묘청이 당시 고려 내에서 칭제북벌론으로 기울어진 여론의 우세를 이용해 김부식 등의 반대자를 물리치지 못하고 섣부르게 군사를 일으킨 점.

묘청이 비록 반란 후에 스스로 왕위에 오르지 않고 인종으로 하여금 서경으로 행차하여 대위국(大爲國)의 국호와 연호를 받기를 구하였으나, 인종으로서는 당연히 용납할 수 없는 반역 행위였다는 점.

묘청이 서경에서 거병하면서 친당(親黨)인 정지상 백수한 등에게도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아 결국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점.

묘청의 거병과 그 실패는 결국 칭제북벌론자의 와해를 가져왔다는 점(신채호는 윤언이의 실각을 대표적인 예로 들고 있다.

이 중 신채호가 묘청을 비판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4번이다. 묘청의 광망(狂妄)한 거병과 실패로 인해 결국 칭제북벌론자(독립당) 전체가 산산이 부서지고 흩어졌으며, 오히려 사대주의파가 득세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 몽고의 침입과 조선(朝鮮)의 창업이 더해지면서 결국 조선 사회 전반이 사대주의의 노예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11) 결국 신채호는 조선 역사의 독립 사상이 패망하게 된 가장 큰 책임을 묘청에게 지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왜 신채호가 묘청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처럼 알려졌을까?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을 통해 신채호는 조선 역사의 독립 사상이 패망하게 된 가장 큰 책임을 분명 묘청에게 지우고 있다. 사실 신채호는 묘청의 거병이 실패한 이유도 김부식이 유능해서가 아니라 묘청이 무능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12)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신채호가 묘청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일차적으로는 신채호에게 그 원인이 있다. 신채호는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에서 분명 묘청의 서경 거병을 비판하면서도, 결국 이 일로 인하여 조선의 독립 사상이 패망하게 된 것이 안타까워 이를 지나치게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결국 이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신채호의 본의를 오독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13)

또한 많은 사람들이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서문만 널리 읽고 본문은 꼼꼼히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신채호가 묘청의 서경 전역을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으로 표현한 것은 맞다. 그러나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분명 아니다. 다만 이 사건의 여파로 조선의 독립 사상이 패망하게 되었으니 이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는 것이 신채호의 본 뜻이다.

 

 

1) 검토에 사용된 책은 을유문화사에 발행한 韓國史硏究草이다.

2) 인종은 고려 17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1123~1146년이다.

3) 묘청은 1132년에 기름을 넣은 큰 떡을 대동강에 담가 두고 그 속에서 기름이 조금씩 새게 하였다. 기름이 물 위로 떠오르면서 오색빛을 내자 묘청은 이것을 신룡이 흘린 침이라고 선전하며 서경의 상서로움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이 일이 곧 탄로나면서 묘청은 유신(儒臣)들로부터 거센 반대를 받게 되었다.

4) 애초에 묘청은 풍수지리설을 앞세워 서경으로 천도할 것을 주장하였는데, 잇단 자연 재해는 이러한 주장의 신빙성을 크게 떨어뜨렸다.

5) 이와 같은 인식이 있었기에 신채호는 묘청의 난이 아닌 묘청의 서경 전역이란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6) 신채호는 19241013일부터 1925316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글을 모아 1929조선사연구초를 펴냈다. 이 책에는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과 함께 모두 6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 ‘묘청의 난1135년에 일어났다. 신채호는 자신이 처한 시대로부터 약 일천 년 이래 일어났던 사건들 가운데 이것이 가장 큰 의미를 가진다고 보아 이와 같은 제목을 지었던 것이다.

7)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 . () () () 3() 정치상 투쟁

낭가(郎家)는 매앙 국체상(國體上)에는 독립 자주 칭제(稱帝) 건원(建元)을 주장하며, 정책상에는 흥병북벌(興兵北伐)하여 압록 이북의 구강(舊疆)을 회복함을 역창(力倡)하고, 유가(儒家)는 반드시 존화주의(尊華主義)의 견지에서 국체는 중화(中華)의 속국(屬國)됨을 주장하고, 따라서 그 정책은 비사후폐(卑辭厚幣)로 대국을 사()하여 평화로 국을 보()함을 역창하여 피차 반대의 지위에 서서 항쟁하였다. (중략) 불교는 대개는 낭가와 접근하였다.”

8) 윤관은 고려 예종(睿宗) 때의 관료이다. 윤관은 예종의 명을 받아 1107(예종 2) 여진을 정벌하고 9성을 쌓았다. 신채호는 예종과 윤관을 화랑의 사상을 실행하려던 군신(君臣)으로 보고 있으며, 동북 9성의 상실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

9)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 . 묘청의 광망(狂妄)한 거동 - 서경(西京)의 거병(擧兵)

평양은 실로 당시 도성(都城)될 지점에 만만불의(萬萬不宜 : 절대로 마땅하지 않다)하거든 칭제북벌론자가 매양 평양천도를 전제로 함은 비상한 실책이니, 윤언이가 전자(前者 : 칭제북벌론)를 주장코 후자(後者 : 서경천도론)에 부동의함은 과연 탁견이라 이를 것이다.”

10) 신채호는 묘청이 풍수설을 이용해 서경 천도를 주장한 점이나, 대동강에 떡을 가라앉혀 민심을 조종하려 한 점에 대해서는 크게 비판하고 있지 않다. 이와 같은 일들은 묘청 이전에도 매양 번번이 있어왔던 일이었다는 것이다.

11)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 . 결론

이상 서술한 바를 다시 간략히 총괄해 말하면, 조선의 역사가 원래 낭가(郎家)의 독립사상과 유가(儒家)의 사대주의로 분립하여 오더니 돌연히 묘청이 불교도로서 낭가의 이상을 실현하려다가 그 거동이 너무 광망하여 패망하고, 드디어 사대주의파의 천하가 되어 낭가의 윤언이 등은 겨우 유가의 압박하에서 그 잔명(殘命)을 구보(苟保)하게 되고, 그 뒤에 몽고의 난을 지나매 더욱 유가의 사대주의가 득세하게 되고, 이조(李朝)는 창업이 곧 이 주의(主義 : 유가)로 성취되매 낭가는 아주 멸망하여 버렸다. 정치가 이렇게 되매 종교나 학술이나 기타가 모두 사대주의의 노예가 되어, (중략) 아아 서경전역(西京戰役)의 지은 원인을 알고 어찌 중대하다 아니하랴.

12) 신채호는 묘청이 상황을 지나치게 가볍게 파악한 것이 결국 패망의 원인이 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묘청을 토벌한 계책 또한 김부식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윤언이로부터 나왔음을 주장한다. 그러나 윤언이는 김부식으로부터 정지상에게 연루되었다는 모함을 받아 그 공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13)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 . 묘청의 패망과 윤언이의 말로

묘청이 비록 그 행동이 광망하였으나 그 주의상 불후의 가치는 김부식류에 비할 자가 아니어늘, 전사에 폄사(貶辭)만 있고 살린 말은 전무하니 이는 공론(公論)이 아니다.”

by 빼뽀네 | 2011/08/10 16:48 |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2010년 '인민의 집' 이글루 결산

포스트 (3개)

 000030000000 
 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 

덧글 (13개)

 000070201300 
 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 

트랙백 (0개)

한 해 동안 받은 트랙백이 없습니다.

핑백 (1개)

 000010000000 
 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 

2009-2010 포스트 수 비교 (2009년 포스트: 7개)2009 2009  2010 2010

 000000000310002030100000 
 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 

내가 보낸 글 통계 (39개)

 3350010 
 테마태그가든보낸트랙백보낸핑백블로거뉴스 

명예의 전당

1년 동안 작성한 글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73장 분량이며, 원고 두께는 약 1cm 입니다.
1년 동안의 글을 문고판 시리즈로 낸다면 1권까지 낼 수 있겠네요.
빼뽀네 님은 올 한해 이글루스에서 84,819 번째로 게시물을
가장 많이 작성하셨네요

자주 등록한 태그 & 대표 글 TOP3

 까마귀의향연 (4회) | 
 얼음과불의노래 (4회) | 

자주 발행한 밸리 & 대표 글 TOP 3

내 이글루 인기 글

01
가장 대화가 활발했던 글
리처드 1세 방문 이후 로빈 후드와 그의 무리의 행적
(덧글 4개 )

내 이글루 활동 TOP 3 (덧글을 가장 많이 쓴 사람)

 오필리아(1회)

빈약하군. ^^;;

by 빼뽀네 | 2010/12/31 15:43 | 트랙백 | 덧글(1)

케이트 경의 구애 (2차 수정 - 2010. 9. 9)

케이트 경의 구애 (최초 작성 - 2010. 5. 26)

  하워드 파일의 『로빈 후드의 모험』을 읽다 보니, 이 유쾌한 사나이들이 노래를 무척 즐겨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책에도 다양한 노래들이 실려 있는데, 그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것이 바로 이 <케이트 경의 구애>입니다. 뭐 기사들과 관련된 이야기의 전형적인 형태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한번 소개해봅니다.

케이트 경의 구애

"아서 왕, 왕궁의 연회장에 앉아 있었고,
좌우 양쪽에는
나라에서 제일 위대한,
고귀한 귀족들 또한 합석했네.

까마귀처럼 새까만 흑발의 랜슬롯,
금발머리의 가웨인,
트리스트람 경, 집사장 케이,
그리고 다른 많은 기사들도 있었다네.

붉은 기와를 얹은 처마로부터
밝은 스테인드 글라스 창을 통해 들어온
햇빛은 황금투구와 갑옷 위로
다채로운 빛깔로 타오르네.

그러나 갑자기 원탁 주위로
침묵이 흘렀네.
땅바닥에 기어들 듯이 굽은 한 처녀
연회장 안으로 걸어들어 왔으므로.

코는 매부리코에, 눈은 흐릿하고,
머리털은 긴 백발이었네.
턱에는 수염이 자라는,
보기에도 흉측한 처녀였다네.

그렇게 기듯이 걸어 들어와
아서 왕 발치에 무릎을 꿇었네.
그러자 케이 경 말했네. '이제껏 만난
여인 중에서 제일 못생긴 추녀로구나.'

'오 위대하신 왕이여! 이렇게 무릎 꿇고
간절히 청합니다.'
처녀의 말에, 아서 왕 물었네,
'무엇을 해 주길 원하느냐?'

'저는 심장을 갉아먹는
몹쓸 병에 걸렸습니다.
하지만 제 이 쓰린 고통을 줄이거나,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옵니다.

기독교 기사가 기꺼이
제 입에 세 번 입을 맞추기 전에는,
동, 서, 남, 북
그 어느 곳에도 제게 안식처란 없사옵니다.

저를 치유해줄 그 귀공자는
결혼한 분이어서는 안 되며,
억지로 강요해서도 안 되고,
자발적으로 제게 입 맞추어야 될 줄로 압니다.

그러니 흉측한 저를,
죽음과도 같은 고통에서 기꺼이 구해 주려
고귀하게 애쓰실 기사님,
여기 안 계십니까?'

아서 왕, 애석한 듯 말했네.
'난 이미 결혼한 몸이니,
그렇지만 않다면 내 기꺼이
그대에게 입 맞추었을 텐데.

랜슬롯, 모든 사람들이 보기에,
그대는 기사들 중에서 으뜸이며 최고이니,
어서 나서게, 고귀한 기사여.
어서 저 처녀에게 위안을 주길.'

그러나 랜슬롯 고개를 돌려,
바닥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네.
모든 사람들이 비웃는 소리를 듣자,
거만한 자존심에 상처받았으므로.

'그렇다면, 트리스트람 경, 자네가 나오게.'
'그럴 수 없사옵니다.
결코 자발적으로
흔쾌히 할 수 없기 때문이옵니다.'

'케이 경, 냉소적인 자네는 어떤가?'
'맹세코 그럴 수 없사옵니다!
저토록 흉측한 입술에 입 맞춘 기사에게
어떤 고귀한 숙녀가 입을 맞추려 들겠습니까?'

'가웨인, 그대는 어떠한가?' '전하, 할 수 없사옵니다.'
'게라인트 경, 그대는?' 아니오, 저도 못 하옵니다.
입 맞추고 나면 곧 죽을 것이므로,
제 입맞춤은 아무런 위안도 가져오지 못할 것입니다.'

바로 그때 원탁 주위의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젊은 한 기사가 일어나 말했네.
'전하, 기독교인으로서 베풀 수 있는 그런 위안이라면
제가 기꺼이 저 처녀에게 주겠사옵니다.'

그 기사는 아직 젊지만
경건한 사지와 대담한 마음을 지닌 케이트 경이었다네.
턱에는 황금실처럼 곱고,
밝은 수염 돋아나는.

그러자 케이 경 나서서 말했네. '그는 아직
자신의 여인이라 부를 만한 연인이 없었지만,
저 여인 저렇게 자신을 드러냈으니
빨리도 연인을 얻었네.'

용감한 기사 한 번, 두 번,
처녀에게 입맞추고, 세 번째 입 맞추자,
순식간에 놀라운 변화 일어났네.
그 처녀 더 이상 추하지 않았네.

두 볼은 장미처럼 발그레해지고,
이마는 얇은 아마처럼 새하얗고,
가슴은 흰눈과도 같았네.
두 눈은 새끼사슴처럼 맑게 빛났네.

숨결은 초원 위로 불어오는
여름날의 미풍처럼 달콤했고,
음성은 살랑이는 나무처럼 부드러워
더 이상 갈라지거나 거칠지 않았네.

머리칼은 황금처럼 반짝였고,
두 손은 우유처럼 뽀얗게 되었네.
불결하고 낡고 더러운 외투는
비단 드레스로 바뀌었네.

기사들은 모두 놀라 멍하니 바라보았네.
케이 경 한 마디 했네. '아름다운 아가씨,
당신만 괜찮다면 맹세코,
지금 기꺼이 입 맞추겠소.'

그러나 젊은 케이트 경, 한쪽 무릎 꿇은 채
처녀의 아름다운 옷자락에 입 맞추고 말했네.
'그대는 감히 비길 자 없으니,
나, 그대의 종이 되게 하여 주오.'

처녀 몸을 굽혀 케이트 경의 이마에,
입술에, 두 눈에 입 맞추고 말했네.
'이제 당신은 제 주인이십니다.
나의 주인, 나의 사랑, 일어나세요!

그리고 제가 소유한 모든 부,
제 땅을 당신께 드립니다.
이제껏 그 어떤 기사도
당신이 보여준 그 고귀한 예의 보여주지 못했으므로.

전 마법에 빠져 그토록 괴로운 고통을 당했지만,
당신이 이제 저를 구해 주었으니,
이제는 제가 저 자신을
다시 당신께 드립니다.'"

덧글 1. 랜슬롯의 비겁함.
  마법에 걸려 늙고 못생긴 처녀가 등장하여 기사들에게 키스를 요구하자, 아서 왕과 케이트 경을 제외한 원탁의 모든 기사들은 그것을 거부했다. 대개 이러한 요청에 대하여 이야기의 주인공을 제외한 다른 기사들이 의례적으로 보이는 행동들이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눈에 띈 것은 바로 랜슬롯의 반응이었다.
  랜슬롯은 익히 알고 있듯이 원탁의 기사 가운데 제일 가는 기사이며, 그에 대한 아서 왕의 신임 또한 각별한 것이었다. 그러니 아서 왕이 처녀의 요청을 들어줄 기사로 가장 먼저 랜슬롯을 지명한 것은 당연했다. 랜슬롯은 그 처녀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물론 그는 이 노래의 주인공이 아니다. 하지만 그 거부의 이유를 살펴보면 랜슬롯의 비겁한 면모가 드러난다.
  다른 기사들은 소리 높여 거부의 말을 내놓지만 랜슬롯은 말 없이 고개를 돌려 바닥만 쳐다보았다. 왜 그랬을까? 이것이 단지 처녀의 요청을 거부한다는 뜻이었을까? 랜슬롯의 행동이 나타난 부분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랜슬롯 고개를 돌려,
바닥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네.
모든 사람들이 비웃는 소리를 듣자,
거만한 자존심에 상처받았으므로.

얼핏보면 처녀의 요청을 거부한 것을 비웃는 사람들의 소리에 자존심에 상처받은 것처럼 읽힌다. 그런데 조금 찬찬히 읽어보면 그런 것이 아님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먼저 다른 기사들의 경우 처녀의 요청을 분명하게 거절하고 있지만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그 점을 비웃지 않는다. 비웃는 소리는 오직 랜슬롯을 향해서만 나왔다. 왜 그랬을까? 내 생각에는 사람들은 랜슬롯과 귀네비어 왕비의 불륜에 대한 점을 비웃고 있다고 생각한다. 위의 부분을 시간 순서로 다시 배치하면 이렇게 된다.

  • ① (아서 왕이 처녀의 요청을 들어줄 사람으로 랜슬롯을 지명했다.) ② (랜슬롯은 처녀/왕의 요청을 거부했다.) ③ 모든 사람들이 랜슬롯을 비웃었다. ④ 랜슬롯은 거만한 자존심에 상처 받았다. ⑤ (자존심에 상처 입은 것을 감추기 위해) 랜슬롯은 고개를 돌려 바닥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여기에서 빠진 것은 무엇일까? 다른 기사들이 거부하는 내용과 비교해 보면 그 답을 쉽게 알 수 있다. 다른 기사들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처녀의 요청을 거부하지만, 랜슬롯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처녀의 요청을 거부하는 이유가 바로 귀네비어 왕비와의 불륜이기 때문이다. 물론 랜슬롯은 이 말을 소리 높여 말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었고, 아서 왕이 알아서는 안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랜슬롯과 귀네비어 왕비와의 불륜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거부 이유를 대지 못하는 랜슬롯을 비웃는 것이다.
  이러한 랜슬롯의 행동은 매우 비겁한 것이다. 그는 귀네비어 왕비와의 불륜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었으나, 그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서왕의 원탁에 초대된 기사로서의 명예와 권리를 모두 누리고 있다. 이것이 과연 명예를 가장 으뜸으로 생각하는 기사의 행동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케이트 경의 구애'는 그것만으로도 재미있는 노래이지만, 무엇보다도 랜슬롯의 이중성을 알려주는 것 같아 좋은 자료라고 생각한다.

덧글 2. 덧글 1에서 얘기한 내용을 알기 전에도 역시 나는 '아서왕 전설'에 나온 인물 가운데 랜슬롯을 가장 싫어했다. 그 까닭은 두말 할 것도 없이 귀네비어 왕비와의 불륜이며, 이것이 아서왕을 파멸시킨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랜슬롯을 지칭할 때는 '배신자 랜슬롯'으로 부르고 있다.

[출처]
『로빈 후드의 모험』, 하워드 파일, 현대지성사, 148~153쪽.

by 빼뽀네 | 2010/05/26 15:56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리처드 1세 방문 이후 로빈 후드와 그의 무리의 행적

[들어가기 전에]
  일전에 '로빈 후드와 그의 무리'를 다룬 글에서 나는 한명 한명을 소개할 때마다 '로빈과 함께 하다가 사자왕 리처드1)의 방문을 받게 된다.'라는 식의 문장으로 끝냈다. 이것은 매우 의도적인 것이었는데, 리처드 1세의 방문은 로빈 후드와 그의 무리들의 성격을 변화시킨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빈 후드를 비롯해서 그의 무리들 가운데 몇몇 대표적인 사람들2)은 노르만 정복자들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빈 후드와 그의 무리들은 리처드 1세의 즉위와 노팅엄 시 방문을 무척이나 환영하고 있다. 심지어 로빈 후드는 수도승으로 변장한 리처드 1세와 아래와 같은 대화를 나누기까지 한다.

 
  리처드 왕은 노새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며 로빈에게 말했다. "정말, 그대는 주위에 훌륭한 젊은이들을 많이 두었군, 로빈. 내 생각에는 리처드 왕조차도 이런 근위대는 몹시 마음에 들어할 것이네."
  그러자 로빈이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이 사람들이 내 부하들 전부는 아니오. 지금 50여 명 정도는 내 오른팔 리틀 존과 함께 다른 볼일을 보러 나가 있고. 하지만, 리처드 왕에 대해서는, 내 말해 두는데, 그분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피를 마치 물처럼 하나도 아깝지 않게 쏟아 붓지 않을 사람이 우리 중에는 단 한 사람도 없소. 당신들 성직자들은 우리의 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소. 하지만 우리 용사들은 우리의 행동과 꼭 닮은 그분의 용감한 위업 때문에 그 분을 충심으로 좋아한다오."

『로빈 후드의 모험』, 하워드 파일, 현대지성사, 2001년, 383~384
※ 밀줄 친 부분은 글쓴이 강조

  리처드 1세는 노르만 왕조를 계승한 플랜테저넷 왕가 출신이다. 노르만계 정복자에 대한 로빈의 인식 변화 부분은 차근차근 고민해 볼만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로빈 후드와 그의 무리는 리처드 1세를 통해 전부 사면4)을 받게 된다. 이 중 로빈 후드와 리틀 존 그리고 윌 스칼렛과 알란 어 데일은 리처드 1세와 함께 런던으로 떠나게 되며, 나머지 무리들은 리처드 1세가 정식으로 왕실 삼림 감독관으로 등록시켜주어 셔우드 숲에 남게 된다.

[리틀 존]
  로빈과 함께 리처드 1세를 따라 런던으로 떠났던, 리틀 존은 1 · 2년 뒤에 다시 노팅엄으로 돌아와 셔우드 숲이 보이는 곳에서 살았다.5) 이후 리틀 존은 잉글랜드 육척봉 챔피언으로서 대단한 명성을 떨치다가 셔우드 숲으로 돌아온 로빈 후드와 합류하게 된다.

[윌 스칼렛]
  로빈과 함께 리처드 1세를 따라 런던으로 떠났던, 윌 스칼렛은 얼마 후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6) 윌 스칼렛은 이야기에서 더 이상 등장하지 않지만7), 윌 스칼렛 역시 나중에 로빈 후드가 셔우드 숲으로 돌아왔을 때 그에게 합류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윌 스튜틀리, 윌 스카들록, 방앗간지기 미지]
  로빈이 떠난 후에 왕실 삼림 감독관으로 일하던, 이 세 사람은 리틀 존을 제외하곤 셔우드 숲으로 돌아온 로빈 후드에게 가장 먼저 합류했다.

[로빈 후드의 나머지 무리들]
  로빈 후드가 셔우드 숲으로 돌아오고 일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예전의 용사들이 모두 그의 주위로 돌아왔다고 한다.

[로빈 후드와 알란 어 데일 부부]
  로빈 후드는 왕의 총애를 받아 급속하게 승진하였고, 그 결과 왕의 근위대장이 되었다.8) 그리고 마침내 리처드 1세로부터 헌팅던 백작(Earl of Huntingdon)이라는 작위를 수여받았다. 로빈 후드는 리처드 1세를 따라 십자군 전쟁에도 참가했고, 리처드 1세가 전사하자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왔다.
  이후 로빈 후드는 존 왕(King John, 리처드 1세의 동생)으로부터 사흘간의 체류를 허락받아 셔우드 숲을 다시 방문하게 된다. 그러나 로빈 후드는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지 않고 옛 부하들과 함께 셔우드 숲에 남게 된다. 그리고 로빈의 이러한 선택은 존 왕의 분노를 사게 된다.
  알란 어 데일과 엘렌 부부는 늘 로빈 후드를 따라다녔고, 로빈과 함께 셔우드 숲을 방문한다.

덧글 1. 일전에 로빈 후드와 그의 무리들을 역사 밸리에 옮겼다가 밸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어 도서 밸리로 옮겼습니다. 이번 글도 리처드 1세의 방문 이후 로빈 후드와 그의 무리들의 행적을 책 속에서 찾아 정리한 것이라 애매하긴 합니다. 다만, 글을 작성하며 가졌던 노르만계 왕조(또는 정복자)에 대한 로빈의 인식 변화가 매우 궁금하고 이는 역사 밸리 분들의 도움을 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역사 밸리에 올립니다. 양해 바랍니다.

1) 원래는 '사자심왕 리처드(King Richard of the Lion's Heart)'라고 불리우고 있다. 이후로는 리처드 1세로 표기한다.
2) 리틀 존이나 탁발승 턱과 같은 사람들이 그런 사람이다.
3) 로빈 후드가 성인이 된 윌 스칼렛을 처음 보았을 때 그를 귀족의 자제로 여기고 분노를 나타내는 모습, 리틀 존이나 턱이 교회의 고위 관료를 대하는 행동에서 그러한 반감이 드러나고 있다.
4) 여기에는 로빈 후드의 활솜씨 못지 않게 리의 리처드 경이나 그의 아들 리의 젊은 헨리경의 변호도 도움이 되었다.
5) 이때 리틀 존은 법을 준수하며 얌전히 살았다고 한다.
6) 아마도 그가 처음 사면을 받을 때 이전에 집사를 죽인 일도 함께 사면을 받았기 때문에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7) 하워드 파일의 『로빈 후드의 모험』을 말한다. 로빈 후드와 그의 무리를 다룬 다른 글을 아직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8) 여기에는 그의 궁사로서의 뛰어난 명성이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참고도서]
『로빈 후드의 모험』, 하워드 파일 지음, 서미석 옮김, 현대지성사, 2001.

by 빼뽀네 | 2010/05/25 18:13 | 트랙백 | 핑백(1) | 덧글(4)

로빈 후드와 그의 무리

  로빈 후드는 영국 노팅엄 시 인근에 셔우드 숲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유명한 범법자이다. 그는 리틀 존을 비롯한 훌륭한 사나이들을 무리로 거느렸으며, 그 수는 14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로빈 후드와 그의 무리들 가운데서도 이름이 알려진 자들은 다음과 같다.

로빈 후드(Robin Hood)
  록슬리 시 출신으로 영국에서 제일 가는 궁사1)이며, 육척봉2)을 다루는 실력도 상당하다. 로빈 후드는 어렸을 때 활쏘기 대회에 참가하러 가는 도중, 자신을 조롱하는 삼림 감독관에게 격분하여 그를 활로 쏘아 죽이게 된다. 이 일로 인해 그에게는 2백 파운드의 현상금이 붙게 되었으며, 이후 로빈 후드는 셔우드 숲에 숨어 살게 된다. 곧 그의 주위로 다양한 이유로 추방된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으며, 그들은 로빈 후드를 자신들의 대장으로 삼았다.
  그는 영국에서 가장 악명이 높은 범법자 가운데 하나지만, 쓸데 없는 살생을 하지 않으로 노력하고3) 무엇보다도 공정한 태도를 지니고 있다4). 또 누구보다도 유쾌한 사나이이다.
  로빈 후드는 노팅엄 주의 장관이나 해리퍼드의 주교 같은 탐욕한 지배자들을 골려주었고, 리의 리처드 경과 같은 불운한 사람이나 셔우드 숲 인근의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었다.
  로빈 후드는 황금처럼 노란 색의 수염과 6월의 하늘만큼이나 파란 눈을 가진 것으로 그려진다. 셔우드 숲을 중심으로 자유인으로서 다양한 모험을 즐기던 로빈 후드는 사자왕 리처드의 방문을 받게 된다.

- 테비오트데일(Teviotdale)의 자크(Jokc) : 로빈 후드가 노팅엄 주 장관이 연 활쏘기 대회에 참가했을 때 사용한 가명. 로빈 후드는 진홍색 누더기를 입고 한쪽 눈에 안대를 했으며, 자신의 수염을 호두 염료를 이용해 갈색으로 염색하고 나타나 주 장관의 눈을 속였다. 결국 로빈 후드는 활쏘기 대회에서 우승했고 노팅엄 주 장관의 계략을 역으로 이용해 그를 골려주었다.

리틀 존(Little John)
  로빈 후드의 오른팔. 그는 매우 큰 체구를 지녔으며, 로빈의 무리 가운데 육척봉을 다루는 기술에 있어서 손꼽히는 실력을 지니고 있다. 처음 로빈 후드와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 서로 먼저 건너려고 실랑이를 벌이다, 로빈 후드를 물 속으로 처박아 승리했다. 그러나 곧 로빈의 무리들에게 붙잡혔으며, 로빈의 권유를 받아 결국 로빈 후드의 한 패가 된다.
  리틀 존은 로빈이 혼자 모험을 떠났을 때 남은 무리를 지휘하며, 때로는 로빈과 무리를 나누어 모험에 나서기도 한다. 물론 리틀 존 역시 로빈처럼 혼자 모험을 떠나 즐기기도 한다.
  본래 이름은 존 리틀(John Little)로 본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출신지를 따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러나 로빈의 무리에 합류하게 되었을 때 윌 스튜틀리에 의해 리틀 존으로 개명하게 된다. 이후 로빈과 함께 다양한 모험을 즐기다가 사자왕 리처드의 방문을 받게 된다.

- 레이놀드 그린리프(Reynold Greenleaf) : 리틀 존이 주 장관의 부하가 되었을 때 사용했던 가명. 리틀 존은 노팅엄 시에서 5년마다 열리는 대규모 축제에 참가하여 궁술대회에서 우승했다. 이것이 주 장관의 눈에 띄어 그는 한동안 주 장관의 부하 생활을 하였다.

윌 스튜틀리(Will Stutely)
  로빈이 무리와 함께 있지 않거나 무리를 나눌 때 로빈 대신 이를 지휘할 수 있는 사람 중 하나. 로빈은 윌 스튜틀리를 가리켜 '셔우드 숲에 사는 늙은 여우보다도 더 꾀가 많다'고 했다.
  얼굴빛은 햇빛과 바람에 그을린 딸기처럼 갈색이고, 알란 어 데일을 제외하면 중부 지방에서 가장 출중한 외모를 지녔다고 한다. 로빈과 함께 다양한 모험을 즐기다가 사자왕 리처드의 방문을 받게 된다.

윌 스칼렛(Will Scarlet)
 맥스필드 시 출신으로 로빈의 누나의 아들이다. 아버지를 괴롭히던 집사를 혼내주다가 실수로 죽이게 되어 로빈을 찾아온다. 본래 이름은 윌 감웰(Will Gamwell)이나, 로빈과 만난 후 이름을 윌 스칼렛으로 바꾸었다.
  윌 스칼렛은 로빈의 무리들 가운데 가장 힘이 센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로빈과 처음 만났을 때 어린 나무를 단번에 뿌리째 뽑아 육척봉을 만든 것에서 그의 힘이 잘 드러난다. 이후 로빈과 함께 다양한 모험을 즐기다가 사자왕 리처드의 방문을 받게 된다.

알란 어 데일(Allan a Dale)
  요크 출신의 음유시인으로 외모와 노래 모두 매우 빼어나다. 로터스트림 골짜기에서 엘렌 오브 더 데일(Ellen o' the Dale)을 만나 사랑에 빠졌으나, 엘렌의 아버지가 이를 알고 둘 사이를 강제로 갈라 놓았다. 상심한 그는 윌 스튜틀리를 통해 로빈과 만나게 되었으며, 로빈과 그의 무리에 도움을 받아 결국 엘렌과 결혼하게 된다. 그의 노랫소리는 유쾌한 로빈의 무리들조차도 말을 잃을 정도로 매우 뛰어났다.
 이후 로빈과 함께 지내다가 사자왕 리처드의 방문을 받게 된다.

데이비드
  데이비드는 늘상 '젊은 돈커스터의 데이비드(David of Doncaster)'로 불리우는데, 로빈의 무리를 가운데서 가장 젊은 축에 속하는 사람이다. 이제 막 턱에서 보드라운 수염이 돋아나기 시작한 젊은 청년으로 그려지지만, 그의 체구는 리틀 존 외에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중부 지방의 레슬링 챔피언이다.
  데이비드에 대한 일화는 그리 많지 않은데, 제일 유명한 것이 덴비에서 흉터투성이 윌리엄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가 흥분한 덴비 주민들에게 맞아 죽을 뻔한 일이다. 이때 그는 리의 리처드 경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 역시 로빈과 함께 지내다가 사자왕 리처드의 방문을 받게 된다.

윌 스카들록(Will Scarthelock)
  윌 스카들록은 사냥개처럼 호리호리하고, 수사슴처럼 민첩한 발을 지닌 것으로 소개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윌 스카들록의 뛰어난 점은 수많은 이야기들과 전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윌 스카들록은 동료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즐겨 이야기 해 준다.
  로빈과 함께 다양한 모험을 즐기다가 사자왕 리처드의 방문을 받게 된다.

턱(Tuck)
  파운틴 수도원의 탁발승. 로빈이 알란 어 데일을 엘렌과 혼인시키기 위한 계책을 세웠을 때 로빈을 도와 이를 성사시킨다. 이후 로빈의 무리에 합류하여 군종사제 역할을 한다. 턱은 매우 큰 목소리를 지녔고, 걸걸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 그려진다. 부드러운 입술, 방울 목, 예쁜이, 송곳니라는 이름의 4마리의 사냥개를 기르고 있으며, 로빈과 함께 지내다가 사자왕 리처드의 방문을 받게 된다.

와트(Wat)
  벤베리 시 출신의 땜장이로 노팅엄 주 장관이 건 공모에 응해 로빈 후드를 잡으러 나섰다가 오히려 로빈에게 골탕을 먹는다. 그러나 그 후 로빈의 권유에 응해 그의 무리에 합류하게 된다. 노래 실력 또한 상당하며 로빈과 함께 지내다가 사자왕 리처드의 방문을 받게 된다.

아서 어 블랜드(Arthur a Bland)
  블라이스 출신의 무두장이. 아서는 레슬링에서 5년 동안이나 중부 챔피언을 지내다가 링컨의 아담5)과 맞붙어 패했다고 한다. 또한 육척봉 시합에서도 그를 대적할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나중에 리틀 존을 만나게 되어 그와 육척봉 시합을 벌이게 되어, 자신이 쓴 가죽 모자에 도움을 받아 리틀 존에게 승리를 거둔다. 이후 로빈의 무리에 합류하여 함께 지내다가 사자왕 리처드의 방문을 받게 된다.

미지
  물방앗간지기의 아들. 로빈과 리틀 존 · 윌 스칼렛 등은 부지런한 미지를 놀래켜 주려다가 오히려 그에게 흠씬 두들겨 맞게 된다. 이후 로빈의 무리에 합류하여 함께 지내다가 사자왕 리처드의 방문을 받게 된다.

노팅엄 주 장관의 요리사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리틀 존을 상대할 정도로 완력이 세고 검술 실력이 상당한 사나이. 리틀 존이 레이놀드 그린리프라는 가명을 써서 주 장관의 부하가 되었을 때 만났다. 다시 셔우드 숲으로 돌아가려는 리틀 존을 제지하다가 오히려 동료가 될 것을 권유받고, 그와 함께 셔우드 숲으로 온다. 이후 로빈의 무리에 합류하여 함께 지내다가 사자왕 리처드의 방문을 받게 된다.

1) 노팅엄 주 장관이 개최한 활쏘기 대회나 헨리 2세가 개최한 활쏘기 대회를 통해 그의 뛰어난 궁술이 선보이고 있다.
2) 육척봉(quarterstaff)은 중세 잉글랜드에서 사용되었던 무기이다. 2미터 정도 되는 나무 막대 하나로 만드는데, 간혹 끝을 금속 소재를 가지고 강화하기도 한다. <위키피디아 참고> 더 자세한 사항은 이곳으로 http://ko.wikipedia.org/wiki/%EC%9C%A1%EC%B2%99%EB%B4%89
3) 노팅엄 주 장관이 군사들을 풀어 로빈과 그의 무리들을 잡으려 했을 때, 로빈이 부하들을 다독여 쓸데 없는 충돌을 막으려 한 것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난다. 또 로빈이 늘상 자신이 삼림 감독관을 죽인 일을 후회하는 것에서도 이러한 로빈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4) 리틀 존이 노팅엄 주 장관의 은쟁반을 훔쳐 왔을 때 이를 꾸짖은 일이나, 해리퍼드의 주교를 맞이해 그가 가져가던 물건을 배분하는 로빈의 모습에서 이러한 공정성을 엿볼 수 있다.
5) 이 아담을 젊은 돈커스터의 데이비드가 제압하고 중부 지역의 챔피언이 된 것이다.

[참고도서]
『로빈 후드의 모험』, 하워드 파일 지음, 서미석 옮김, 현대지성사.

by 빼뽀네 | 2010/05/20 18:53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김구만을 비판할 수는 없겠구나.

  안재성 작 『경성 트로이카』를 읽다가, 다음과 같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선 땅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압록강에 이르렀을 때, 조선의용군의 행진이 중단되었다. 북한을 선점한 소련군이 중국공산당에 소속된 연안파 조선의용군이 무장한 채 귀국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장독립운동의 영웅이던 무정 장군조차도 총을 버린 채 개인 자격으로 입국해야 했다.
  사회주의 우방이라 믿어 온 소련군이 앞길을 막았다는 사실에 다들 흥분하고 난리를 쳤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일본은 물러났으나 조선인은 여전히 주인 행세를 할 수 없었다. 총을 버리지 않으려고 흥분하고 개탄하던 이들은 결국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고 국경을 넘었다. 김태준 부부도 애써 먼 길을 들고 온 장총과 권총을 버리고 맨몸으로 압록강 다리를 건넜다.
- 안재성, 『경성트로이카』, 339쪽에서 인용
  나는 김구가 미군정의 요구를 받아들여 개인 자격으로 귀국한 것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과 김구만의 일이 아니었다. 긴 세월 조선의 독립을 위해 애써왔던 운동가들에게 '개인 자격으로의 입국'은 얼마나 뼈 아픈 상처가 됐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으로의 귀국을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일단 김구의 행위에 대한 비판은 거두어야 할 것 같다. 미군정 뿐만이 아니라 소군정이 독립 운동 세력에 대한 견제나 무시를 한 것에 대한 것도 더 찾아 공부한 후에 다시 판단을 내려야 할 것 같다.

by 빼뽀네 | 2009/10/23 18:16 | | 트랙백 | 덧글(2)

존 스노우의 검, 롱클로우

<롱클로우>

월의 나이트워치 로드커맨더이자, 에다드 스타크의 서자인 존 스노우의 검.

  롱클로우는 본래 모르몬트 가문의 검이었다.1) 그러나 월의 나이트워치 로드커맨더였던 제오르 모르몬트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2) 답례로 롱클로우를 존 스노우에게 준 것이다.
  발리리아산 강철3)로 만들어진 검은색 검신에는 세 개의 홈이 파여있고, 검신의 길이는 일반적인 롱소드보다 15센티미터 정도 더 길다고 한다. 칼자루는 속에 납을 넣은 옅은 회색 돌덩이로 만들었다. 칼자루에는 울부짖는 다이어울프의 모습을 새기고4), 다이어울프의 눈 부분에는 석류석5)을 박아 넣었다. 검고 부드러운 가죽으로 칼자루를 싸고, 은색 띠를 두른 검은색 칼집을 가지고 있다.
  롱클로우는 한 손이든 두 손이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검이라고 한다.

1) 롱클로우는 모르몬트 가문에서 5백년 동안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전해져 내려왔다. 제오르 모르몬트는 월에 오면서 롱클로우를 아들인 조라 모르몬트에게 물려 주었다. 그러나 조라 모르몬트는 노예 매매를 벌이다 발각되어 망명을 하고, 이 때 롱클로우는 집에 두고 간다. 그래서 다시 제오르에게 돌아오게 된 것이다.
2) 이 일은 『얼음과 불의 노래』 1부 <왕좌의 게임>에 실려 있다. 되살아난 시체의 공격을 받아 죽을 뻔한 모르몬트 경을 존과 고스트가 구해낸 일을 말한다.
3) 롱클로우는 한번 불에 타, 칼날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모두 재가 되어 버렸다. 모르몬트 경은 그 일을 떠 올리며, "칼날에 손상을 주려면 지난번 같은 화재가 백번쯤은 더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것을 통해 발리리아산 강철의 뛰어남을 알 수 있다.
4) 본래 롱클로우의 칼자루는 가죽과 나무와 은으로 만들었고, 손잡이 끝에는 모르몬트 가문을 상징하는 곰의 머리를 조각했었다. 그런데 새로 만들면서 다이어울프로 바꾼 것이다. 이는 모르몬트 경이 롱클로우의 새로운 주인인 존 스노우를 배려한 것이다.
5) 존이 기르는 다이어울프인 고스트의 눈이 붉은색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도서>
『얼음과 불의 노래』 1부, <왕좌의 게임>
『얼음과 불의 노래』 2부, <왕들의 전쟁>
『얼음과 불의 노래』 3부, <성검의 폭풍>
『얼음과 불의 노래』 4부, <까마귀의 향연>

by 빼뽀네 | 2009/09/18 16:15 | | 트랙백 | 덧글(2)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